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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V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들

lost 와 24 : 연옥에서 살아남기

2010/06/15 02:41  |   TV/방송/광고  |   키노씨
'위대한' 이라는 수사가 어색하지 않은 두 미국드라마가 최근에 종영했다(24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하지만). 가벼운 단상.

1. 24
속도감 있는 정치 액션 음모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보여준 '24'는 결국 기만적인 미국의 보수주의로 회귀한다. 이것은 대단히 아쉬운 결론인데, 여기에서 만약에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내가 기대하는 답은 하나다. S8-Ep20 이후에 시도된, 하지만 결국 도덕적 보수주의에 의해 좌절된, 영웅과 악당은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에 대한 용서 없는 드라마다. 그것이 아니라면, '24'는 그 모든 영광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보수적 휴머니즘에서 단 한발도 철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미숙아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본'시리즈의 길을 쫓다가 갑자기 '해리슨 포드'식 애국주의로 좌절한 '24' (잠정적인) 마지막 시즌은 아쉽다.

2. 로스트(Lost)
'24'와는 다른 방향에서 '로스트'의 결말 역시 종교적 보수주의로 회귀한다. 평행우주가 떡밥이고, 사실은 윤회임! 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이 모호한 결론은, 실은 중세 이후에 탄생한 기독교의 '연옥' 사상에 좀더 흡사하다(물론 이거야 보는 사람 마음이다). 이 연옥 속에서 끊임없이 시험받는 주인공들은 결국은 '선(善)'을 택하고, 그들은 모두 구원받는다. 이 드라마적 관습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라서 '로스트'가 실험한 그 모든 '떡밥'들을 완전히 무화시켜버린다. 그러니까 떡밥에서 어느 순간 질적으로 비약해버리는 그 흥미진진한 모험담, 그 궁극의 모자이크, 신들의 주사위 게임에서 스스로의 실존을 시험받는 그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만들어내는 삶이라는 거대한 벽화의 마지막 그림은 안개 속으로 휩싸여버린다. 역시 아쉬운 결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연옥
'24'도 '로스트'도 모두 연옥을 연상시킨다. 그 연옥에서 그들은 결국 나름의 방식으로 승리한다. 하지만 그 승리는 기만적이다. 한쪽은 고민없는 도덕적 보수주의로 회귀하고, 다른 한쪽은, 나름 감동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너무 쉽게 이끌림으로써 존재론적인 허무를 낳는다.

연옥은 그 모든 지옥적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천국 쪽으로 훨씬 더 가까이 쏠려 있다. 그러므로 카톨릭 기독교의 저승 신앙의 원동력은, 연옥의 영혼들이 [신곡]에 나오는 것과 같은 환희에 찬 지진음을 내면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그 중단 없는 행렬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이 천국의 열망일 것이다.

- 자크 르 고프, 최애리 역, '왜 연옥인가', [연옥의 탄생], p.682, 문학과 지성 : 서울, 1995.











지속가능한 노이즈 마케팅과 안티 트래픽 : 소녀시대와 윤서인

2010/01/17 15:11  |   단상들  |   키노씨
발아점 : 주성치 트위터
... 야후는 언제까지 윤서인을 잡고있을건가. 직원이라서, 안티들이 트래픽 늘려줘서 잡고있는거겠지.. (주성치)

윤서인(야후 만화쟁이)이 또 터뜨렸다. 역시 이번에도 소녀시댄데, 이번엔 좀 쎄다. 소녀시대와 붕가붕가를 거의 노골적으로 연결짓는 카툰이다. 새해맞이 떡치기 장면(정말 절구에 담긴 떡을 치는 소녀시대)는 유머라고 하기엔 심하게 시궁창스럽다. '노이즈 마케팅'을 의도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는 삐리리함이 드러난다. 그런데 주성치의 지적처럼 왜 야후는 이 문제아(?)를 방치하는걸까? 왜 깔끔하게 계약 쫑내지 않나?

주성치가 자문 뒤 곧 자답하는 것처럼, 문제는 포털 연예뉴스 시장이 미끼질과 노이즈 마케팅로 돌아가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물론 연예시장 못지 않게 삼류스러운 정치담론 시장에서도 진중권과 변희재 모델이 있지만. 지속가능한 노이즈 마케팅과 안티 트래픽의 앙상블이랄까나?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숙주에 기생하는 이런 기생충스러운 행태들에 무관심으로 답하는 일인데, 이건 정말 답이 없어 보인다. 소녀시대가 떡치는 그림. 소녀시대 성희롱. 이걸 대한민국에서 거절할 남녀노소가 도대체 얼마나 있겠나. 나처럼 소녀시대 멤버 이름도 잘 모르는 인간도  '뭐야?' 이러면서 확인하는 판국에.

1. 우선 저질 링크는 블로그든 트위터든 가급적 올리지 않는거다.

2. 그런데 윤서인 사례처럼 '소녀시대 떡치는 그림'이 궁금한 경우엔 어쩔건가? 글 쓴 나도 궁금해서 봤는데, 그 글을 읽은, 접한 독자들, 트윗인들에겐 너희는 보지마! 이럴건가? 차선은 좀 기다리는 방법이다. 그래서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같은 그나마 괜찮은 메타언론에서 이걸 다루면 그걸 링크 인용해서 보여주는 방식이 있겠다. (아무래도 프레시안, 경향, 한겨레, 좀 날라리스러운 오마이도 이런 개떡같은 이슈를 다루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프레시안 빼놓곤 다들 다룰 확률도 꽤 높아보인다...),

3. 그런데 그런 메타언론들은 연예찌라시들 만큼 속보성이 강하지 않으니, 굳이 이 그림을 인용한 다른 기사를 열혈 블로거, 열혈 트윗인의 실시간 뉴스 스트리밍 마인드로다가 시의성 팔팔 넘치게 보여주고 싶다면, 혹은 보여주지 않아도 독자들이 찾아서 읽을 것 같다면... 뭐 그땐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보고 나서 이런 개허접 미끼질, 쌩저질 양아치 노이즈 마케팅에 붕어처럼 달려들지는 않으리, 애써 한번 허무함을 뒤로 하고 헛된 다짐을 하는 수 밖에....

추.
왜 우리는 착한 정보, 훈훈한 소식, 고양된 의견에 주목하지 않고, 날라리스럽고, 양아치스러우며, 쌩저질 그 자체인 나쁜 정보, 축축하고, 메스꺼운 소식들에 더 주목하는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좀더 높은 사회적 비판의식, 좀더 성숙한 고민의 담론이 아니라, 왜 '소녀시대 떡치는 이 개허접 그림'에 우리의 관심은 집중될 수 밖에 없는거딜까.... 혹시라도 한 소식 얻은 분 계시면 살짝 귀뜸해주길 부탁드린다.



기자 없는 기사 : 2012에 대한 어떤 영화기사를 읽고

2009/11/15 08:45  |   단상들  |   키노씨

아래 짤방은 뉴시스에서 조인스닷컴에 제공한 영화 2012에 관한 기사다. 기사 머리와 꼬리를 아무리 살펴도 기자 이름을 확인할 수 없다. 말이 필요없어서 기자 이름도 생략했나보다. :D 이런 무책임하고, 개차반인 일들이 온라인 저널리즘을 통해 흔히 벌어진다. 그냥 보도자료 베낀게 쪽팔려서 자기 이름을 지운건가?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다. 스스로 언론이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이름을 걸어라. 이 말이 블로거들 역시 자신의 실명을 확인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익명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글에 대한 자기 책임의 최소한을 확보해야 한다. 그 글과 어떤 실존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자 이름도 없이 "말이 필요 없는 영화"라고 설레발치는 모습은 헛웃음만 난다.

 추.
통신사라서 기사공급에만 방점이 쪅혔을 수도 있겠고, 조인스닷컴에서 기사를 공급받는 과정에서 해당 기자의 이름을 누락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구체적인 영화 평에서 글쓴이가 공중증발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http://news.joins.com/article/919/3874919.html?ctg=15